25화,  남자 잘 만나 팔자 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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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온도랑이, 천상의 아미_우아한 JS (이서민 VER.)

“뭐야, 그거?”

“보면 모르겠어요? 공주님이 제일 좋아하는 돈이잖아요.”

나는 지금 오랑이 들고 흔드는 돈 때문에 혼란스러웠다. 순간, ‘저 놈이 내 돈을 훔친 건가?’ 싶었지만, 그럴 리 없다. 나는 원래 현금을 들고 다니지 않는다.

게다가 집안에도 감춰둔 현찰 같은 건 없다. 그렇다면 도둑질을 한 것도 아니란 소리다.

그럼 고구마 깎고 번 돈을 삥땅 친 건가? 그럼 어제 나한테 준 돈을 포함해 총 6만 8천 원을 받았단 뜻인데…

이런, 한 시간에 두 박스 반을 깐 게 아니라 세 박스를 깠던 거구나.
그럼 그렇지.

오랑이 믿을 수 없는 놈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말끝마다 거짓말뿐이더니, 결국 돈마저도 숨긴 건가?

이놈이 이 돈으로 나를 꼬드겨 서울로 연오개를 찾으러 가려고 하는 게 분명하다. 아니면, 대체 왜 아침부터 옷을 차려입고, 가방까지 둘러매고 있겠어?

나는 확신했다. 그리고 그를 다그쳤다.

“장난해? 지금 내가 네 허술한 술책에 속을 것 같아? 그 오만 원으로 날 꼬셔서 서울에 가려고 하는 거잖아? 나한텐 안 통해.”

“오만 원이 부족한가요?”

“…뭐?”

오랑은 내 말에 대답도 하지 않고, 그 문방구 퀄리티의 티라노사우르스 지갑에서 또 다른 오만 원을 꺼냈다.

나는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그럼 고구마를 한 시간에 다섯 박스를 깠다고?

이건 시급 만 원이 넘는다는 뜻이다.

이런 재능충 같으니라고!! 그렇게 잘하는 일을 안 하겠다는 이유가 도대체 뭐냐?

“너, 왜 그 일 관둔 거지?”

“힘들어서요. 하루 종일 일해 봤자 얼마 안 되는 돈이고, 일 끝나면 몸이 욱신거리고 뼈마디가 부서질 것 같습니다. 차라리 전투를 하는 게 낫죠. 고구마 껍질 까는 건 제 자존감마저 무너지는 일이에요.
정말 비전도 없고, 미래도 없고, 희망도 없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알아. 하지만 넌 인간계에서 더 좋은 직업을 구할 수 없어. 넌 신분을 증명할 수 없잖아. 그리고 고구마 껍질 깎는 데 소질이 있는데 왜 안 한다는 거지? 네 재능을 왜 썩히는 거냐고? 난 이해할 수 없다.”

내 말에 오랑의 표정이 심각하게 일그러졌다. 그가 왜 그렇게까지 분노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지금 이 순간, 그는 화가 나 있다.

그는 한참 동안 바닥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아마도 스스로 화를 삭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갑자기, 그는 지갑에서 또다시 오만 원짜리 지폐를 연달아 뽑아냈다.

한 장.
두 장.
세 장.
네 장.
다섯 장.

그렇게 그의 손에는 총 25만 원이 쥐어졌다.

순간, 내 머릿속에서 헬 게이트가 열렸다.

혼란과 아비규환의 도가니 속에서 한 줄기 빛처럼 스친 생각.

고구마로 일당 26만 8천 원을 벌었다고?

이게 가능한가?
설마 신이라서?
천상계 탑급 무사였기에 칼질을 빨리 한 건가?

온갖 잡생각이 머릿속을 뒤흔들었고,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때, 오랑이 입을 열었다.

“이 지갑으로 말할 것 같으면, 오만 원짜리가 계속 나오는 지갑입니다. 제가 제 신의 능력으로 창조했죠.”

“…신의 능력?”

“네. 무엇이든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이죠. 물론 급에 따라 퀄리티가 달라지긴 합니다.
그리고 아무 때나 함부로 쓸 수 없죠. 저는 제 임무를 위해서만 신의 능력을 쓸 수 있습니다.

즉, 이세계에서 제 생존과 공주님의 각성을 위해서만 가능하다는 거죠. 일종의 함부로 쓸 수 없는 공금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신의 능력이라는 것은.”

나는 그의 설명이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보다도, 지갑에서 돈이 끝도 없이 나오는 상황 자체가 정신 붕괴 수준이었다.

말도 안 돼.
오만 원…

이건 내가 택배 상하차 중노동을 꼬박 5시간을 해야 벌 수 있는 돈이다. 그리고 하루 9시간을 기계처럼 고구마 껍질을 까야 벌 수 있는 돈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오만 원이…
저 허접한 티라노사우르스 지갑에서 나왔다고?

단지 그가 신이라서?

나는 이상하게도 억울함과 분노, 그리고 동시에 의심이 치밀어 올랐다.

“그거… 진짜 인간계 돈 맞아? 장난감 돈이나 위조지폐는 아니겠지? 만약 그렇다면, 너 진짜 죽어. 위조지폐는 중범죄야. 사람을 죽이는 것과 비슷한 형벌을 받는 일이라고.”

“무슨 소리예요! 이건 한국은행에서 정식 발행한 원화 지폐입니다. 그리고, 달러도 필요하시면 가능합니다.”

“말도 안 돼.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오랑은 한숨을 쉬며, 다소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염려하시는 건 알겠지만, 지금 이 돈은 진짜 돈이 맞아요. 단지, 다른 곳에 있는 걸 여기로 옮겼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돈이 순간이동을 한 거죠.

돈 많은 사람 계좌에서 5만 원이 빠져도 티 안 나잖아요? 그 계좌에서 5만 원이 사라지는 대신, 제 지갑에서 오만 원이 생기는 겁니다. 그 사람들한테 5만 원은 돈도 아닐 테니까요. 기부받았다고 생각하세요. 공주님이 이 인간 세계를 구할 거니까, 윈-윈인 거죠.”

오랑의 말은 묘하게 설득력이 있었다. ‘기부를 받는다’는 말에, 남의 돈을 훔친다는 죄책감도 슬그머니 사라질 것만 같았다.

“정말 아무 일도 없는 거지? 절도나 위조지폐 사용으로 내가 쇠고랑 찰 일은 없지?”

“그렇다니까요. 절도가 아니라 기부고, 위조지폐가 아니라 순간이동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인류가 멸망하는데 통장에 아무리 많은 돈을 가지고 있어 봤자 뭐합니까?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신이니 가능한 일이고, 이건 하늘의 특명입니다. 그래서 가능한 거죠.”

믿고 싶었지만 믿을 수 없는 현실. 황금알을 낳는 거위 같은 오랑의 티라노사우르스 지갑이라니.

기쁨과 동시에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찝찝함. 왜일까? 아마도 내가 직접 번 돈이 아니라서일 것이다.

나는 오랑의 지갑을 바라보며 수많은 갈등과 생각에 휩싸였다.

양심이 찔린다. 노자의 도덕경이 떠오르고, 맹자의 군자의 도리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스스로 죄를 짓는 건 아닌가 싶어 셀프 검열까지 하고 있다.

하아… 나란 여자, 어쩔 수 없는가 보다.

판타지 소설 속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 눈앞에 펼쳐졌는데, 막상 현실이 되니 깊숙이 빠져들지 못하는 내가 답답했다.

그때, 오랑이 말을 걸어왔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심각하게 하시나요? 기쁘지 않아요? 저는 고구마 깎지 않아 너무 좋은데…”

“기쁘지. 하지만… 내 돈이 아닌 것 같아서…”

“이게 왜 공주님 돈이에요? 제 돈이지.”

…아, 그렇구나. 내 돈이 아니지.

순간, 오랑이 마치 내 자식인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의 돈이라는 걸 인지하는 순간,

모든 죄의식에서 해방되었다.

이야~~~! 대박이다, 오랑!!

나는 신이 나서 미친 사람처럼 폴짝폴짝 뛰기 시작했다. 태어나서 이렇게 광분한 적은 처음이다.

그럼 그렇지. 어쩐지 평소 은연중에 이런 생각을 했었다.

“내가 전생에 옥황상제의 딸이었다는데,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허접하게 살게 하진 않겠지?”

그리고 항상 느꼈던 이상한 감각. 마치 어떤 존재, 신일지도 모를 존재가 평생 나를 엿 먹이고 있다는 느낌. 어쩌면 진짜였을지도?

…그런데 왜 엿을 먹인 거지?
아, 맞다.
죄를 지었다고 했었지?

그렇다면 이제 죗값을 다 치렀다는 소리다. 그래서 내게 오랑을 보내신 거다. 나를 보좌하고, 호위하라고.

이로써, 드디어 내 인생에 꽃이 피었다. 저주가 끝나고, 새로운 운명이 시작된 것뿐만 아니라, 그냥 말 그대로 꽃길!

음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나는 미친 듯이 웃었다. 오랑 또한 미소 지으며 말했다.

“더 이상 구질구질한 알바는 하지 않아도 돼요, 공주님. 저와 함께라면요.”

나는, 나도 모르게 오랑을 번쩍 안아 들었다. 신기하게도 하나도 무겁지 않았다. 징그럽지도 않았다.

“아, 아휴! 왜 이래요! 아휴, 정말! 그만하세요!”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든 나는, 내 얼굴을 그의 볼에 비비고 있던 걸 깨달았다.

…내가 왜 이러고 있는 거지?
너무 기쁜 나머지 의식마저 놓았구나.

뻘쭘해진 나는 슬며시 오랑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러자 그는 손에 들고 있던 25만 원을 지갑에 도로 넣으며 말했다.

“가요. 서울에. 연오개를 찾으러. 연오개를 찾으면, 이 돈을 드릴게요.”

“…아니, 선불이야. 나는 무조건 선불로 줘야 움직일 거야.”

내 말에 오랑의 눈빛이 가늘어졌다. ‘이 여자, 교활하군.’ 아마도 그렇게 생각하는 중일 것이다.

“그럼 선불로 반을 주고, 연오개를 찾으면 나머지를 드릴게요.”

“좋아.”

나는 돈에 눈이 멀어 흔쾌히 허락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점점 손해 보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계산을 하기 시작했다.

25만 원의 반, 12만 5천 원. 교통비 5만 원, 식비 2만 원, 이동 시간 포함 연오개를 찾는 시간 대략 10시간. 시급 만 원이면 10만 원. 도합 17만 원.

이 자식이 인건비는 나중에 주겠다는 소리네?

네가 인간 세상에서 산 적도 없는데, 선금 비와 잔금 비의 룰은 아주 잘 알고 있구나.

그래도 괜찮다. 이건 내게 펼쳐질 꽃길을 위한 투자다.

나는 그대로 화장실로 직진했다. 서울로 가기 위해, 꽃단장을 해야지!

거울을 보니, 오늘따라 내 얼굴이 화사해 보이고 빛이 나는 것 같았다.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얼굴에 윤기가 도는 이유도 이런 원리인가?

역시, 이래서 사람들이 돈, 돈, 돈! 하는구나!

태어나서 지금까지 겪었던 고난과 가난, 풍파와 모진 역경들이 마치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내 이야기를 자서전으로 쓰면 대서사시 한 편이 나올 수준.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 모든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렸다.

이제 내 손에, 오만 원을 마음껏 꺼내 쓸 수 있는 지갑이 있으니까!

이야~~~! 오랑이 의뢰한 일을 하다 보면, 3년 뒤 난 부자가 되어 있겠지?

더 이상 똥수저가 아니다. 흙수저에서 은수저, 그리고 다시 금수저, 어쩌면 다이아 수저까지 갈 수 있다는 희망이 솟구쳤다. 눈물이 날 정도로 행복했다.

“됐어… 다 끝났어.”

나는 서둘러 씻고, 채비를 마쳤다.

그런데 그동안 오랑은 계속 옆에서 ‘호박에 분칠한다고 수박 되는 거 아니니, 대충하고 가자’고 졸라댔다.

“으휴, 진짜! 그만 졸라! 그래도 사람처럼은 하고 가야지!”

“공주님, 예뻐요. 화장 안 해도 예쁘다고요. 제발, 빨리 가요.”

거짓말.

가증스러운 놈.
재촉하려고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다니.
내가 모를 줄 알았냐?

일단 오랑의 일을 수주받아 돈을 벌면, 성형부터 해야겠다. 현대 성형 의학 기술은 신의 손길이니까.

오크도 여신으로 바꾸는 대한민국 K-성형 기술. 그 신기술을 마음껏 누려주겠다!

미래에 예뻐질 나 자신을 생각하니, 너무 행복하다.

드디어 나에게도, 죽자 살자 남자들이 매달리는 로맨스가 펼쳐질 테니까!

“음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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