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라온도랑이, 천상의 아미_우아한 JS

물안개 자욱한 칠흑 같은 어둠 속. 간간히 들려오는 그로테스크한 까마귀 울음소리.
나는 지금 으슥한 폐가 앞에 서 있다. 다 허물어진 폐가는 이 세상 온갖 귀신 천 마리가 들끓을 것 같은 흉흉한 모습이다.
사람보다 귀신이 더 무서운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은 채, 전방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니? 오랑, 네가 대체 왜 거기 서 있는 거냐?
녹슬고 낡아 기능을 잃은 철문이 사선으로 입구를 가로막고 있었고, 그 뒤로 9등신의 오랑이 서 있었다. 눈을 번뜩이며 나를 노려보면서.
“가만두지 않을 거야!”
그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손으로 철문을 거칠게 밀었다. 철문은 끼이익 소리를 내더니 내 머리 위를 넘어 휘익 날아가버렸다.
아,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이놈이 본색을 드러내고, 나를 해치려 드는구나.
겁에 질려 몸을 떨고 있으면서도, 어차피 오래전부터 죽고 싶었던 몸 아닌가. 그래, 죽이려면 죽여라. 차라리 잘됐다. 그렇게 생각하며 그를 노려봤지만…
오랑이 한 걸음씩 다가올 때마다 내 두 다리는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멈추세요, 공주님!”
내 뒷걸음질을 눈치챈 오랑이 소리쳤다. 나는 그 목소리에 얼어붙은 듯 그대로 멈췄다.
그리고 순간, 그의 기묘한 옷이 눈에 들어왔다. 스페이스 오페라의 우주선에서나 볼 법한 슈트와 무협지 속 등장인물이 입을 것 같은 옷이 기묘하게 뒤섞인 모습. 아니, 대체 저건 뭐야?
하지만 패션 스타일은 둘째 치고, 그는 대체 왜 나를 이렇게 위협하는 걸까?
혹시… 고구마 껍질 까기 알바 때문인가? 아, 이럴 줄 알았다. 그걸 시킨 원한으로 날 죽이려는 거지?
“미안해, 오랑! 정말 미안해! 하지만 나도 어쩔 수 없었어. 딱 한 번만이라도 다른 여자들처럼 남친 덕 좀 보려고 했을 뿐이야! 다시는 안 그럴게!”
다급하게 사과했지만, 오랑의 표정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얼마나 화가 난 건지, 그의 눈엔 불꽃이라도 튈 것 같았다.
그러더니 그가 허리춤으로 손을 옮겼다. 나도 따라 시선을 내렸다가… 엥? 칼이 없는 칼 손잡이?
하아…
허리춤에는 스타워즈의 광선검 같은 손잡이가 달려 있었다.
대체 이건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진짜 광선검인가? 그래서 옷도 저렇게 이상하게 입었던 거구나.
오랑은 손잡이를 꽉 쥐고는, 칼날이 보이지도 않는데 나를 겨누며 자세를 잡았다. 물론 내가 보기엔 그냥 빈 손잡이를 휘두르는 것 같았지만.
아니, 잠깐.
저건 신의 물질로 만들어진 칼이라서 내 눈에 안 보이는 건가? 나는 그렇게 나름의 합리화를 시도했지만, 상황은 내 예상을 넘어섰다.

“지이이잉!”
손잡이에서 광선검 특유의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진짜로 검이 나타났다.
하지만 스타워즈 스타일이 아니었다. 형광등처럼 생긴 검이 아니라, 푸른빛이 휘몰아치는 아름다운 검이었다. 검광이 부드럽게 퍼지며, 마치 춤추듯 빛이 흩어졌다.
와…
이 칼이라면 나도 입에 물고 칼춤이라도 추고 싶을 정도였다. 천상계 물건은 다르긴 다르구나. 정말 신묘하고 아름답다.
하지만 감탄은 잠시뿐. 내가 검에 취할 때가 아니다. 오랑은 지금 이 검으로 내 목을 칠지도 모른다.
갑자기 오랑이 외쳤다. “천상황제 보위 검술! 일도일각!”
그는 공중으로 칼을 휘두르며 외쳤고, 밝은 푸른빛의 검광이 나비처럼 나빌레라 공중에서 춤을 추었다.
결국 그가 흩뿌린 검광은 공중에서 나비처럼 흩어지더니 나를 향해 날아왔다. 그걸 보고 나는 생각했다.
“아, 이렇게 죽는구나.” 죽음을 받아들이며 눈을 감았는데…
다행히도 검광은 내 머리 위를 지나며 날아가버렸다. 그가 나를 죽이려는 건 아닌 듯했다.
크허어어어어어어어!!
갑자기 등 뒤에서 음산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소리만으로도 괴물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소름 끼치는 울음소리에 겁이 났지만, 나도 모르게 몸을 돌렸다.
멀리, 집채만 한 시커먼 물체가 보였다. 토토로에 나오는 먼지 요괴, 마쿠로 쿠로스케처럼 생겼지만, 귀엽기는커녕 흉악하고 무서운 모습이었다.
그 괴물은 끔찍한 소리를 내며 입을 벌렸다.
“우와, 입 한번 크다.”
나는 감탄 아닌 감탄을 하고 있었는데, 그 순간 괴물이 입을 벌린 채 흡입을 시작했다.
내 몸은 마치 추풍낙엽처럼 빨려 들어갔고, 나도 모르게 땅을 붙잡으며 버텼다. 하지만,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이미 조금씩 끌려가고 있었다.
“죽겠구나…”
그렇게 죽음을 예감하며 한탄하는 순간, 머리 위에서 무언가 휙 날아올랐다.
오랑이었다.
공중으로 솟구친 그는 칼을 들고 광란의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가 흩뿌린 초승달 모양의 검광들이 공중을 수놓았다.
“우와…”
집에서 그곳이나 만지며 밥이나 축내던 오랑 새끼가 이렇게 멋질 수가!
나는 감상 아닌 감상을 하며 그의 멋진 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때 오랑이 흩뿌린 검광이 괴물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러자 괴물은 칼침을 맞은 듯 입을 다물고, 몸을 쭈그러뜨리며 괴로워했다.
그때였다.
공중에서 가볍게 내려온 오랑이 내 팔을 잡아끌었다.
“빨리 도망치세요! 저쪽으로요!”
그가 가리킨 방향으로 나는 부리나케 달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는 따라오지 않았다.
아마 괴물을 처치하려는 거겠지? 그가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내 목숨이 우선이었다.
한참을 달리는 동안 뒤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괴물을 처치한 오랑이 오는 줄 알고 나는 반가운 마음에 걸음을 멈췄다.
그런데…
너는 또 누구냐?
오랑이 아니라 다른 남자가 나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하지만 참 멋있게 생겼다.
기생 오라비 같은 오랑보다 훨씬 낫구나, 하고 감탄하며 보고 있었는데, 그 남자가 내 앞에 다다랐다.

그리고 내 팔을 잡아끌며 말했다. “어서 가시죠, 공주님.”
“흐어…”
목소리마저 좋았다.
내 귀에 직접 속삭이는 그의 목소리에 귀르가즘이 찾아왔다.
그는 오랑보다 키가 조금 작았지만 다부진 몸을 가졌다. 단단한 근육, 오리 궁둥이, 그리고 굵직한 말벅지까지. 내 눈이 호강하네…
게다가 단정한 머리와 깔끔한 턱. 면도 후 생기는 거무스름한 그늘이 내 마음을 설레게 했다.
“이름이 뭐야? 상남자?”
내 물음에 그는 미소를 머금고 대답했다.”연오개.”
“연오개?!”
내가 외치는 순간,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
눈앞에 있던 빛나는 남자의 모습은 점점 흐릿해지더니, 차갑고 무거운 현실의 공기로 바뀌었다. 눈을 떠보니, 꿈이었구나.
꿈속의 연오개.
그는 지금까지 오랑이 찾아야 한다고 고집부렸던 바로 그 인물이다. 천상계가 내 마음을 바꾸려고 일부러 이런 꿈을 보낸 걸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꿈속에서 본 연오개의 믿음직스러운 모습은 완벽했다. 그 단단한 어깨, 따뜻한 눈빛, 낮게 울리는 목소리까지… 모든 게 이상형에 가까웠다. 오랑 같은 변태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나는 자리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행거 옆에 수건을 덮고 자고 있는 오랑을 보자마자 눈살부터 찌푸렸다.
사실, 그가 처음 나타났을 때 4살짜리 아이였기에 침대에서 자도록 허락했었다. 하지만 낮에 어른으로 바뀌고 난 후, 그 허락은 단번에 취소했다. 침대에서 잔 적은 단 하루도 없다. 허락한 지 하루도 안 돼 어른으로 변했으니까.
나는 하품을 하며 방 안을 둘러봤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분명 오랑이 불을 끄고 잤는데, 방이 왜 이렇게 밝지?
고개를 돌려 창문을 보니 이미 햇빛이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스마트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오전 8시.
“이런, 늦잠을 잤네.”
아마도 꿈속의 연오개가 너무 설레게 해서였을 것이다.
그런데 문득 떠오르는 의문. 해가 떴는데, 왜 오랑은 어른으로 변하지 않은 거지?
“오랑! 일어나 봐! 일어나라고!” 나는 그가 덮고 있는 수건을 확 걷어내며 소리쳤다.
“아효, 왜 깨우세요… 졸린데…” 오랑은 몸을 웅크린 채 눈을 비비며 투덜거렸다.
나는 한숨을 쉬며 그를 내려다봤다.
“지금 8시야! 해 떴는데 왜 어른으로 변하지 않은 거냐고?”
오랑은 그제야 고개를 들고 나를 빤히 쳐다봤다.
“…고구마 껍질 까기 싫어서요.”
“…뭐?”
“그냥 다시 아이로 24시간 지내기로 했어요.”
이 자식이. 다시 놀고먹겠다는 심보다.
낮에는 일을 시켜 돈을 벌어오고, 집에 오면 다시 아이가 돼서 식비도 많이 들지 않았던 그 상황이 진짜 좋았는데… 이제 와서 24시간 아이로 지낸다니.
그가 태연하게 다시 몸을 웅크리려는 모습에 속에서 천불이 치밀었다.
“오랑, 진짜로 그렇게 살겠다고?”
“네.”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결국 또 내가 고생해야 하는 건가. 다시 일자리를 구해야 한다니, 세상이 참…
머릿속이 복잡했다. 연오개 같은 완벽한 이상형은 꿈속에만 존재하고, 내 앞에 있는 건 변태 진드기 오랑이라니. 그 차이가 한숨을 넘어 짜증을 유발했다.
하지만 정작 오랑은 내 마음은 상관없다는 듯, 침대에서 일어난 오랑은 자기 나름대로 수건을 똑바로 갠다고 대충 접어놓고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고구마도 안 깎는데 이렇게 부지런 떨 필요가 있나? 뭐, 이런 말 같지도 않은 행동을 하는 건지.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오랑이 다시 아이로 변한 바람에 눈앞이 캄캄했다. 다시 일자리를 구해야 한다니, 세상 참… 그 생각에 한숨만 절로 나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화장실에서 나온 오랑은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작은 가방을 사선으로 둘러맸다.
하지만 그 가방, 어디서 주워온 건지 꼬질꼬질하고 허접한 게 티가 팍 났다.
“어디 옷 수거함에서 주워왔냐?” 물론 속으로만 말했다.
그런데, 밥도 안 먹었는데 대체 왜 저렇게 부지런을 떠는 건지 모르겠어서 물었다.
“어디 가려고?”
“서울이요.”
“너 혼자?”
“아니요. 공주님이랑요.”
미친놈. 또 연오개를 찾으러 가자고 하려는 거다. 몇 번이나 말했는데도 고집을 부리고 있다니.
물론, 연오개는 내 이상형에 가까운 사람이지만, 지금 나에겐 그런 사치가 필요 없다.
먹고사는 게 급선무인데 무슨 연오개야.
그리고, 각성도 안 할 거고, 신성도 회복할 생각 없다. 그게 대체 나한테 무슨 이득이 된다고?
“웃기는 소리 하지 말고 그만 좀 해. 천상계 사람들아. 안 한다고 했지?”
“할 수밖에 없을걸요?”
“…뭐? 왜?”
오랑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끝을 흐렸다. 그리고 마치 “얼마면 돼?”라는 표정으로 썩소를 지었다.
나는 그 표정이 의아해, 눈썹을 찌푸렸다. 그가 가방을 열어 지갑 하나를 꺼내 들었을 때는 더 이상했다.
티라노사우르스 만화 캐릭터가 그려진, 딱 문방구에서 팔 것 같은 싸구려 지갑. 대체 저건 어디서 난 거지?
내가 의문에 찬 눈빛을 보내고 있을 때, 오랑은 지갑에서 오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그것을 나를 향해 살랑살랑 흔들며 말했다.
“이제 고구마 안 깎아도 돼요, 공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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