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라온도라이, 천상의 아미

“다리 아파요. 안아 주세요, 공주님.”
“싫어.”
“아까는 안아 주셨잖아요.”
“그건 내가 그때 난처해서 그랬어. 빨리 도망쳐야 했으니까.”
“안아주지 않을 시엔 지금 당장 소리치며 울겠습니다.”
오랑은 이제 대놓고 협박을 하기 시작했다. 나를 완전히 엄마로 만들어버리겠다는 심산인가. 주변을 둘러보니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짜증이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이젠 조금만 힘들어도 투정 부리고, 협박까지 하겠단 건가?
그가 나를 노려보는 표정이 영 못마땅했다. 머릿속에 불길한 생각이 스쳤다.
설마, 길바닥에 드러누워 생떼 부릴 작정은 아니겠지?
그러면 사람들은 분명 날 ‘이상한 엄마’로 볼 게 틀림없다. 그 시선은 못 견딜 것 같았다. 상당히 창피할 테니까.
나는 오랑의 다리를 바라봤다. 그가 곧바로 다리를 주무르며 진짜 아프다는 연기를 시작했다. 아니면, 내가 쳐다보니 그런 걸지도 모른다.
사실 30분이나 걸었으니 아플 만도 했다. 그렇다고 이 몸이 그를 안아줄 생각은 없다. 팔 빠지는 고통은 천지 물류 센터에서 이미 오지게 겪었으니까.
오랑은 몸은 어린아이지만, 정신은 아저씨다. 징그러운 건 둘째치고, 내 팔이 아프기 때문에 절대 그를 안을 순 없다.
‘어휴, 다른 엄마들은 이걸 어떻게 안고 다니는 거야?’ 천지 물류 센터에서 오랑을 안고 나올 때 나는 확실히 알았다. 4살짜리 아이를 안고 걷는다는 건 택배 상하차 작업만큼이나 고된 일이었다.
길거리에서 엄마들이 아이를 안고 다닐 땐 그렇게 무거워 보이지 않던데, 왜 나한테는 이렇게 힘든 걸까? 내 아이가 아니어서 더 힘든 걸까? 차라리 택배 상하차가 더 낫다.
대책이 필요했다. 나는 빠르게 계산을 끝냈다.
“아이스크림 먹을래?”
오랑의 눈이 반짝였다. ‘오호라, 요놈 봐라. 걸려들었구나. 네가 인간계 아이스크림 맛에 푹 빠진 것이로구나.’ 그러면 이 미끼를 던질 차례.
“아이스크림 사 줄 테니 걸어가.”
“하이고, 다리가 정말 아프네요. 그럼 아이스크림 포기하겠습니다.”
순간, 내 제안이 단칼에 거절당했다. 천상의 맛도 그의 고통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나는 한 발 더 물러섰다.
“그럼 아이스크림 두 개. 저기 잠시 쉬었다 갈래?”
이번에는 오랑이 편의점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더니 먼저 뛰어갔다. 편의 점 앞 테이블에 털썩 앉아 날 노려본다. 자기는 앉아 있을 테니 내가 아이스크림을 사서 대령하라는 뜻이었다.
“그때 네 머리를 쓰다듬지 말았어야 해!”
나는 이렇게 투덜거리며 편의점으로 향했다. 그 순간, 뒤에서 오랑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똑바로 말하세요! 쓰다듬은 게 아니라 쥐어뜯은 거죠! 아직도 얼얼하다니까요!”
처지가 바뀌니 본색이 드러나는 놈이다. 그전에는 “공주님”, “옥황상제 따님” 하며 존경심을 표하더니, 이제는 내 약점을 만들어 놓고는 소리를 지른다.
‘없는 살림에 진드기처럼 붙은 것도 모자라 패악질까지 부리는구나.’
나는 아이스크림 두 개를 사서 오랑에게 가져갔다. 그가 거들먹거리며 손을 내밀었다. 내가 자리에 앉지도 않았는데 아이스크림부터 받겠다는 태도라니, 어이가 없었다. ‘저런 싸가지 없는 놈. 동방예의지국 나라에 이런 경우는 없다!’
아이스크림을 땅바닥에 던져버렸을 일이지만, 지금은 껍질을 까고 있었다. 아마도 ‘좋은 엄마’의 역할 때문일 것이다. 진짜 엄마도 아닌데, 억울했다.
“그때 네 머리를 아예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어.”
“천상에서 하던 버릇이 너무 강해 현생에서도 나온 거겠죠?”
“뭐? 습관?”
나는 오랑의 말에 솔깃했다. ‘천상에서 하던 버릇’이라니. 갑자기 머리가 확 트이며 깨달음이 떠올랐다. ‘아하, 그래서 내가 털만 보면 만지고 싶었던 거구나.’ 이유 없이 털을 좋아했던 게 전생의 영향 때문인 것이다.
“그럼 내가 전생에 동물 좋아했나 봐?”
오랑이 뜨끔한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아니요.”
“뭐, 그럼?”
“머리가 긴 남자를 좋아하셨죠. 제 머릿결을 가진 남자들을요.”

오랑은 마치 내가 전생에 좋아했던 남자인 것처럼 머리를 흔들었다. 하지만 땋은 머리라서 폼이 나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비웃었다.
전생과 현생이 연결된다는 말은 어딘가 묘한 느낌을 주었다. 그러나 머리 긴 남자를 좋아하는 것이 ‘버릇’이라니, 취향이라고 해야 맞지 않을까? 나는 정확한 답을 알고 싶어 다시 물었다.
“내가 전생에 머리가 긴 남자의 머리를 쓰다듬는 버릇을 가졌던 거구나?”
오랑은 교묘한 말에 빠져들었다.
“아니요.”
“아니라니?”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걸 좋아한 게 아니라, 머리 긴 남자만 좋아하셨다고요. 물론 저처럼 매끄럽고 부드러운 머릿결의 남자만요.”
이건 무슨 뜻인가?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졌다. ‘머리 긴 남자만 좋아한다?’ 그게 습관이 될 정도라면 꽤 많은 수를 좋아했다는 말인데,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나는 오랑의 의도를 꿰뚫어보았다. 그는 지금 나를 놀리는 것이다. 오랑은 결코 순수한 아이가 아니다. 변태 같은 면모와 교활함, 그리고 계산적인 태도를 가진 존재였다. 분명 교활한 의도가 숨겨져 있을 것이다.
“공주님은 전생에 더 재미있는 버릇도 있었답니다.”
“말해. 뭐였는데?”
“말 못 합니다.”
“왜? 긴 머리의 남자는 쓰다듬는다는 걸 말했으면서 그것보다 더한 버릇은 왜 얘기하지 않지? 난 열린 여자야. 상상 이상의 말을 해도 다 받아들일 수 있는 여자야. 그러니까 당장 말해.”
“죽어도 말할 수 없습니다.”
“왜?”
“말하면 기절하거든요. 이렇게요.”
오랑은 의자에서 내려와 땅바닥에 누워 갑자기 죽은 척을 했다.
‘뭐야, 이건 또…’
나는 한숨을 쉬며 생각했다. 정말 어이없는 상황이다. 저 미성숙한 태도. 그걸 아이니까 봐줘야 할까? 아니, 그는 어른이다. 몸만 작아졌을 뿐.
“일어나!”
내 단호한 한 마디에 오랑은 벌떡 일어나 자리에 다시 앉았다. 아이처럼 고집을 부리지 않는 건 다행이었다. 그는 아무렇지 않게 테이블 위의 아이스크림을 집어 들고 게걸스럽게 먹기 시작했다.
하지만 왜일까? 그런 모습이 왜 이리 짜증이 날까. 예쁜 얼굴을 하고 있어도, 그 속의 뻔뻔한 태도가 문제였다.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나를 힘들게 했다.
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파란 하늘에는 가을의 청명함이 가득했다. 구름은 둥실둥실 흘러가며 모양을 만들어냈다. 토끼 모양, 거북이 모양… 잠시 동심으로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 평화도 오래가지 못했다. 바람 따라 흘러가던 기다란 성 모양의 구름이 시간이 흐르며 이상한 손짓으로 하는 욕 모양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하늘마저 나를 조롱하는 건가.’
잠시 자조적인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오랑이 또 다른 아이스크림을 들고 다가왔다.
“껍질 좀 벗겨 주세요.”
나는 기계적으로 껍질을 벗겨 건네주었다. 그런데 그가 손이 미끄러졌는지 아이스크림이 떨어졌고, 마치 운명처럼 내 바지 가랑이 위에 떨어졌다.
‘…이런 미친.’
분홍색 아이스크림 자국이 베이지색 면바지에 번졌다. .당황해 얼룩을 닦으려 하자 오랑이 내 손을 막아섰다.
“지금 중요한 건 이걸 먹는 겁니다!”
나는 황당함에 화가 치밀었다. 내 바지에 생긴 얼룩보다 아이스크림이 더 중요한 것이냐?
“이봐! 당장 손 떼!”
“싫습니다.”
결국 그는 바지 위에서 아이스크림을 집어 들고 한 입 베어 물었다. 나는 더 이상 말도 나오지 않았다. 바지에 난 분홍색 얼룩을 보며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 상태로 길을 걸을 순 없었다. 너무 눈에 띄었다.
결국 나는 오랑을 들어 올렸다. 그의 몸으로 바지 얼룩을 가리기 위해서였다. 오랑을 잠깐 쳐다보니 그는 승리의 미소를 짓고 있는 듯했다. 어쩌면 철저히 계산된 모략인지도 모른다.
‘결국 이 자식의 뜻대로 되는구나.’
집으로 향하는 길, 내 속에서 분노가 치밀었다.
‘엄마란 이런 건가.’
억울함과 허탈했다. 나는 조용히 길을 걸으며 다음에 반드시 되갚아 주겠다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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