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인간계와 중간계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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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온 도라이, 천상의 아미 (오랑 ver)

“아파.”

“네?”

“아프다고.”

“어디 가요?”

“네가 너무 세게.. 잡고 있으니까.”

이런, 제가 너무 흥분한 나머지 공주님의 팔을 세게 잡고 있다는 걸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러면 안 됩니다. 천상계 최고존엄 옥황상제의 따님이신데…

저는 미션을 받고 인간계로 내려온 천상계 군인입니다. 그런데 잠깐 인간적인 분노에 휘둘려 제 명예를 실추시킬 뻔했습니다. 폭력과 강요는 천상계에서는 금기입니다.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행위죠.

그나저나 믿을 수 없습니다. 천상계의 신인 제가 어떻게 이런 모습을 보였을까요? 인간으로 산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이라니.

단 50%의 인간성 때문에 이렇게 감정적으로 흔들린다면, 100%의 인간성 가진다면 분명 타락으로 이끌릴겁니다. 이런 생각에 정신이 혼미해졌습니다.

천상계의 영혼은 고결하고 아름다우며 자비롭습니다. 폭력, 질투, 속임수 같은 것은 천상계와 거리가 멉니다. 그래서 저는 공주님께 곧바로 사과를 올렸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공주님. 본의 아니게 이런 부족한 모습을 보여드려 송구스럽습니다. 제가 돌아보니 공주님께 무례를 범한 일이 많았습니다. 모두 제 본성이 아닌 인간적인 부족함 때문입니다.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됐어. 그런 말 듣고 싶지 않아. 그런데 네가 말하는 인간성, 그거 좀 치워줄래?”

“네? 그건 치울 수 없습니다. 제가 인간계에 적응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세팅된 부분이라서요.”

“아니, 네 옆에 있는 이상한 거 말이야. 뭔가 기분 나쁘니까 치워달라고.”

그녀의 말이 무슨 뜻인지 한참 이해하지 못하다가, 그녀의 시선이 아래로 향하는 것을 따라가며 나도 깨달았습니다. 공주님이 말한 것은 흐트러진 이불과 주변 환경이었습니다. 아침에 대충 정리하지 않은 침대처럼 보였던 거죠. 

“아이고, 정말 죄송합니다!”


저는 황급히 이불을 정리하며 얼굴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습니다.

“차라리 4살로 돌아가고 싶군요. 그럼 이런 실수는 없었을 텐데 말입니다.”

공주님도 한숨을 쉬며 말을 이어갔습니다.

“나도 그래. 네 신의 능력이 빨리 사라졌으면 좋겠어. 그러면 이런 난처한 일도 없을 테니 말이야.”

그런데… 간절한 마음이 통했는지 순간 나는 빛과 함께 다시 4살 아이의 몸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천상의 메시지가 들려왔습니다. 

<’공주님에게 의도적인 신체적 접촉 금지’라는 규칙을 어겼기에 벌점 10 추가. 인사고과에 기록되었습니다. 부당하다고 생각하시면 추후 천상계로 돌아온 후 이의서를 제출하십시오.>

억울합니다. 단지 인간성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인데, 벌점까지 추가되다니.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인간성을 제어해야겠습니다. 

벌점보다 더 무서운 것은 추궁입니다. 극비 미션이기에 옥황상제님께서 직접 하실 것이 분명하거든요. 벌써부터 현기증이 납니다. 

저는 재빨리 침대로 뛰어가 4살 몸에 맞는 옷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침대 위에 놓아둔 제 통신 단말기를 집어 들었죠. 

이 단말기는 공주님 몰래 이불 속에서 신의 능력으로 창조한 것입니다. 하지만 발신은 불가능하고 수신만 가능한 단말기죠. 족쇄 같이 느껴지는 건 왜 그럴까요?

단말기를 주머니에 넣자 어디선가 비웃음 소리가 들렸습니다. 

“흫히흐흐헐.”

공주님이었습니다. 기분이 몹시 나빴습니다. 

“왜 웃는 거죠?”

“너 뭐한 거야? 지금.”

“옷을 입었는데요.”

“아니, 옷 입고 나서 뭐한 거냐고?”

아, 이런 내 통신 단말기가 궁금하신 거군요. 천상계 전화기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싶으신 것 같았습니다. 주머니에서 단말기를 꺼내 보여드렸습니다.

“제 전화기 입니다. 멋지죠?”

“미친.. 돌았네..”

공주님은 어이없다는 듯 천장을 올려다보았습니다. 분명히 무시하는 태도였습니다. 인간계에서는 볼 수 없는 천상계 에너지로 중간계 물질을 섞어 만든 멋진 물건인데,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설마 질투하는 걸까요? 신의 능력으로 디자인하고 창조한 나의 작품인 통신 단말기를 폄하하는 모습에 가슴이 아팠습니다. 

“제가 맘에 안 든다고 제가 만든 물건까지 폄하시면 안 됩니다. 공주님. 그건 무례하며 무식한 행위입니다.”

“뭔 소리야, 대체. 지금 나랑 장난 해?”

“아니요.”

“전화기는 무슨 개뿔. 너 아까 손 흔들다 걸린 거 아닌 척하려고 전화하는 흉내낸 거 아님?”

심장이 멎는 줄 알았습니다. 이건 정말 큰일입니다. 

공주님이 단말기를 보지 못했다는 것은 그녀의 신성이 제로에 가깝다는 뜻입니다. 단 1%의 신성만 있어도 단말기의 형체를 희미하게나마 볼 수 있었을 겁니다. 

어떻게 된 것이길래 공주님의 신성이 이렇게 완전히 사라지게 된 걸까요? 이보다 더 큰 문제는 미션에 차질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천상계에서는 공주님의 신성을 40%로 예측했습니다. 나머지 60%를 채워 각성시키는 것이 제 임무인데, 신성이 제로라니. 3년 안에 미션 클리어는 불가능해 보입니다.

갑자기 눈물이 솟구쳤습니다. 

“아이고, 아이고. 이런. 어찌하나. 흑흑.”

원통함에 울음은 점점 오열로 바뀌었습니다. 그러자 천상에 두고 온 저의 아름다운 여자친구, 연화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더욱더 비통해졌습니다. 그녀와의 만남은 또다시 뒤로 미뤄지는군요.

“왜 우는 거지? 너의 적나라한 속임수를 간파해서 빠져나가려는 거냐?”

“말 시키지 마세요. 전 지금 절망에 빠졌으니까요.”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네가 이불 속에서 못된 짓 하다 나한테 걸렸는데, 그걸 속이려 거짓말 한 게 들통난 게 왜 널 절망에 빠트리는 거지?”

“공주님은 몰라요. 정말 너무하시군요. 태어나서 지금까지 어떻게 사셨길래 신성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거죠?”

“내 신성이 남아 있건 말 건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인데?”

공주님의 말에 저의 인간성이 꿈틀거렸습니다. 제 마음속에 깊이 자리한 분노가 고개를 들었습니다. 

공주님은 자신에게 신성이 전혀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의 심각성을 모르고 계십니다. 3년 안에 각성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고, 인간계가 무너질 거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저 또한 그녀와 함께 무너질 것이란 사실을 깨달으며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인간계와 중간계는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인간들이 말하는 조상들이 머무는 곳이 중간계인데, 조상이 아프면 자손이 아프고, 자손이 아프면 조상이 아프다는 속설이 실제로 존재합니다. 모두 사실입니다. 인간계와 중간계는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고받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연결이 약해지기 시작한 것은 현대 사회로 들어오면서입니다. 정확히는 대공황 시절부터죠. 

그때부터 인간계는 앞뒤가 바뀌고 위아래가 뒤집힌 것처럼 혼란에 빠졌습니다. 이는 어린 공주님이 전생에 중간계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몬스터를 풀어놨기 때문입니다.

몬스터는 ‘나락’이라는 곳에서 생성됩니다. 나락은 악마와 악으로 이루어진 세계를 말하죠. 이 세계는 인간들이 삶을 살며 만들어낸 악의 에너지와 데이터를 모아놓은 일종의 클라우드 시스템입니다.

세상은 이분법적으로 설명됩니다. 낮이 있으면 밤이 있고, 탄생이 있으면 죽음이 있듯이 말입니다. 선이 있으면 악도 존재하겠죠. 그 악을 모아놓은 곳이 바로 나락입니다. 나락은 일종의 구역이자 감옥과도 같은 곳입니다.

사람들은 상상의 원천 소스를 어디서 받는다고 생각합니까? 단순히 우연히 발생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모두 중간계의 사람들이 신의 세상을 본 데이터를 인간계 자손들에게 전달하는 것입니다. 직간접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 고리인 것이죠.

그래서 인간계에 나오는 지옥의 모습은 모두 나락을 모티브로 상상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나락은 물질로 이루어진 존재가 갈 수 없습니다. 에너지체인 영혼도 가지 못합니다. 악한 사람이 죽어서 영혼이 지옥으로 간다는 말은 거짓입니다. 

타락한 영혼은 소멸될 뿐입니다. 그 영혼이 만들어낸 데이터도 모두 사라집니다. 소멸된 순수 에너지는 다시 아기 영혼을 만드는 재료로 사용됩니다.

믿기 어렵겠지만, 이것이 우주의 비밀입니다. 우주는 정말 치밀하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나락은 그 누구도 접근할 수 없는 곳입니다. 하지만 어린 공주님이 그 나락을 열어버렸습니다. 봉인된 악의 에너지가 풀려났으니 가만히 있을 리 없겠죠. 그 에너지는 끊임없이 마귀와 악마들, 몬스터들을 만들어냈습니다.

중간계는 원래 따뜻하고 정감 넘치는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 몬스터들이 출몰하면서 잔인해지고 살기 힘든 곳이 되어버렸습니다. 그 영향으로 인간계 또한 힘들어지게 된 것이죠.

저도 간혹 중간계로 가서 보스급 몬스터를 처리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물론 실력이 좋아 항상 승리했습니다. 하지만 이건 임시 방편일 뿐입니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나락을 다시 봉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봉인의 열쇠인 천구를 공주님이 깨뜨렸으니 문제가 심각한 것입니다.

어린 공주님은 이 죄로 인간계로 추방된 것입니다. 천구는 사랑의 에너지가 축약된 결정체입니다. 그 사랑의 에너지는 인간계에서 모아야만 합니다. 이제 공주님이 왜 인간계로 떨어지게 되었는지 이해가 되셨나요?

그런데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어째서 그녀의 신성이 제로가 된 것일까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런 상황이 된 것입니까?

옥황상제님의 시나리오대로라면 그녀가 3년 안에 각성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입니다. 정말 큰일입니다.

그녀의 신성이 제로가 된 것과 함께, 저의 희망도 제로가 되었습니다. 꺼이, 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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