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오랑, 인간성의 갈등과 변태적 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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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온 도라이, 천상의 아미 (이서민 ver)

대책이 필요하다. 이건 정말 심각한 일이다. 

오랑 때문에 나는 직장을 잃었고,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지옥 같은 육아까지 떠안았다.

보통의 아이들은 천진난만해서 보고 있으면 귀엽고 예쁘기라도 하다. 하지만 이 오랑 자식은 몸만 아이일 뿐, 속은 시커먼 아저씨다. 순수함과는 거리가 멀다. 

이제는 그가 시도 때도 없이 변신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찔하기까지 했다. 그 생각만으로도 머리가 지끈거려 터질 것만 같았다. 

더 큰 문제는 그와 항상 붙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른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아이의 몸을 가졌기 때문이다. 여기까진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길을 걷거나 어디를 방문했을 때 그가 갑자기 어른의 모습으로 변신하기라도 한다면? 이건 정말 심각한 일이 된다. 경범죄로 신고당하는 건 물론, 나는 논산은커녕 대한민국 어디에서도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게 될 것이다. 

“너 언제 변신하는지 알 수 있어?”

“네, 물론이죠. 신의 능력이 활성화되기 전에 천상의 메시지가 전해집니다. 그때부터 딱 10초 걸립니다.”

뭐? 장난해? 천상의 메시지를 받고 10초 만에 변신이 완료된다니… 그 짧은 시간 안에 옷이라도 제대로 입을 수 있을까? 대비책으로 항상 담요라도 들고 다녀야 할 판이다. 머릿속이 더 복잡해졌다. 

괴로워 눈을  감으니, 변신 후 오랑이 뛰어오던 그 모습이 떠올랐다. 갑자기 분노가 치밀어 눈을 번쩍 뜨고는 방구석에 쭈그려 앉아 이불을 뒤집어 쓴 오랑을 노려보았다. 

잘못을 했다는 건 아는지 그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이불 속에서 손을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데… 뭐지? 이불이 들썩이고 손가락이 꼼지락거리는 게 수상하기 짝이 없었다.

‘대체 저게 무슨 경우야?’  나는 현기증이 났다. 

아무리 천상계 출신이라지만 인간계에는 기본적인 에티켓이 있다. 개념이 없는 건가, 뻔뻔한 건가. 이런 놈이 날 호위하며 천상으로 데려간다니… 믿을 수가 없다. 

‘안 되겠다. 멈춰야겠어.’

뭐라도 던질 것을 찾았다. 눈에 띈 건 빈 500ml 생수병. 그걸 던지려고 손에 쥐었는데—

띠리리리. 띠리리리.

갑자기 울리는 전화벨 소리

하지만 이건 내 전화벨 소리가 아니다. ‘설마… 매니지? 출판 제의?’

‘환청인가?’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며 멍하니 서 있는데, 또다시 들리는 전화벨 소리.

띠리리리. 띠리리리.

그렇다면 환청이 아닌 것인데… 이번엔 확실히 오랑 쪽에서 소리가 났다. 자세히 보니 그가 움직이던 손 근처에서 나는 소리였다. 

이런, 미친… 대체 대체 이게 뭐람. 

“뭐야? 너. 전화벨 소리가 왜 그쪽에서 나지?”

“전화가 왔습니다. 천상계에서 말이죠.”

“뭐? 천상계에선… 그쪽으로 전화 수신을 하냐?”

오랑은 깜짝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화난 듯 손을 꺼내 귀에 갖다 댔다. 그리고는 진진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충신!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인간계로 내려온 칠성 소속 대위 오랑입니다. 말씀하십시오.”

하아… 이젠 연기가지 하고 있네. 손만으로 전화를 받는 척이라니. 내가 속을 줄 알았나. 

그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손만 흔들던 모습이 떠올라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이번엔 한술 더 떠 얼굴까지 일그러뜨리며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지금 저 놈이 한 없이 무서워진다. 

화가 치밀어 그를 노려보았지만, 그는 여전히 귀에 손을 대고 통화를 이어갔다. 

“미쳤어요? 지금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는 환생한 연오개를 찾으라고요?”

격앙된 목소리였고, 몸을 부들부들 떨기가지 했다. 게다가 얼굴을 험악하게 일그러뜨리는 메서드 연기까지. 이 정도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줘야 할 판이다. 

쳐다보고만 있어도 내 입에서 ‘돌은 놈’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상황.  당장 뭐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그를 지켜보며 ‘그래, 어디까지 하는지 두고 보자’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오랑은 통화의 마지막을 향해 가며 심각한 표정으로 천장을 바라보았다. 무언가 부조리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연기력 진짜 끝내주네. 진짜 보고만 있어도 내가 너인 것처럼 감정이 이입되는구나.’

그런데 그 순간 나도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니, 가만히 보니.. 다시 돌아온 그의 출중한 미모 때문인가?

잘생긴 남자는 콧물을 흘려도 멋있다. 침을 흘려도 사랑스럽고, 심지어 길에다 똥을 싸도 멋있다던데… 그런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구나 싶었다. 

아무튼 무성영화의 한 장면이었다면 한 컷의 그림 같은 장면이지만, 정신 차려야 한다. 변태는 변태일 뿐이다.

냉정함을 되찾은 나는 여전히 그의 다음 행동을 지켜보았다. 오랑도 감정을 가다듬더니 다시 통화를 이어갔다.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신상도 없이 느낌적인 느낌만으로 찾으라고요? 이건 명백히 불가능한 임무입니다. 네. 네. 하지만.. 하아~ 진짜, 서울이라고요? 정확히 서울 어디죠?”

오랑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지금 그의 모습은 폭발 직전이었다. 그런 기세로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럼 좌표라도 찍어 주세요! 서울에만 산다고 하면 그곳을 언제 다 뒤집니까? 무슨 일을 이렇게 허술하게 하는지 참!”

거칠게 변한 오랑은 귀에 대고 있던 손을 뗐다. 다른 손으로 버튼을 누르는 시늉을 하더니 침대 위에 ‘아무것도 없는’ 그것을 패대기쳤다. 문제는 그가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상태라는 것.

그는 그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듯 두 손을 허리춤에 얹고 씩씩거리며 천장을 보다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바닥을 내려다보고 또 한 번 한숨을 쉬더니 나와 눈이 마주쳤다. 

두 눈은 옆으로 쭉 찢어져 있었다. 분명 그가 처한 현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는 듯했다. 

나는 너무 화가 났다. 왜 이런 변태 같은 존재가 나에게 이런 모욕을 주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소리치려는 순간, 갑자기 그가 침대 밑을 발로 차며 소리쳤다. 

“상사면 다야? 불가능한 걸 시켜놓고 할 수 있다는 정신이면 다 하게 된다고? 미친놈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제길!”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천상계 사람들도 욕을 하는가 보죠?”

내 존댓말에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는지, 오랑은 그제야 현실을 깨달은 듯했다. 화들짝 놀란 그는 바닥에서 이불을 들어 허리에 돌돌 감아 묶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모든 걸 봐 버렸다.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소리쳤다. 

“당장 나가!!!!!!!!!!!!! 이 변태 자식아!!!!!!!!!!!!!!”

내 목소리가 이렇게 큰 지 몰랐다. 혹시 옆방 이웃이 이소리를 듣고 벽간소음으로 신고를 하면 어쩌나 걱정도 됐지만, 내 분노는 이성을 무너뜨리고 있었다. 

“나가! 나가라고! 꺼져! 꺼지라고! 당장 내 방에서 꺼져! 이 변태 대마왕 자식아!”

내 외침은 마치 악마의 울음소리 같았다. 오랑도 그랬는지, 얼어붙어 꼼짝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내 그의 표정이 심각해지더니 내게로 무섭게 다가왔다. 

‘아차, 그는 지금 190 장신의 어른 남자. 아이였을 때처럼 만만히 봐선 안 되는 건데.’ 

나는 심장이 쿵광거렸다. 

‘그래, 한 번 죽지 두 번 죽냐? 평소 죽고 싶다고 했는데 네가 죽여 주면 오히려 고맙다’는 배짱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결국, 내 앞에 다가온 오랑은 내 팔을 두 손으로 잡고는 소리쳤다. 

“이제 그만하시죠! 그 변태라는 소리. 듣자 듣자 하니 정말 기분이 나쁩니다!”

“뭐라고? 네가 변태짓을 했으니까 변태라고 한 거지. 내가 왜 그런 소리를 들어야 하지?”

“저는 변태가 아닙니다!”

“웃기지 마! 네가 처음부터 내게 했던 짓을 돌아 봐. 변태가 맞아!”

“이건 제가 그런 게 아닙니다. 제 몸이 저절로 그런 거라고요?”

“뭐?”

“제 의도가 아닙니다. 제 몸이 저절로 그런 짓을 하게 만든 겁니다. 제 영혼은 순수하고, 생각도 순결했습니다. 저는 공주님께 마음도 사심도 1도 없습니다. 오직 제 임무를 완수할 생각밖에 없어요.”

그의 말은 설득력이 없어 보였지만, 그 진지한 표정이 나를 살짝 흔들었다. 

“아니, 변태야. 너는 변태가 맞아.”

그러자 그는 더 진지해졌다.

“저는 신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몸을 받아 인간성을 50% 부여받았어요. 반은 신이지만, 반은 인간입니다. 제가 보였던 행동은 제 의지와 상관없이 벌어진 일입니다. 저도 처음에는 혼란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되었죠. 그 모든 행동은 인간이 가진 자연스러운 본능이라는 것을요.”

오랑은 마치 학자가 논문을 발표하듯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엄마가 아이의 건강 상태를 살피기 위해 냄새를 맡듯, 남자는 생식을 위해 여성의 냄새를 맡는 게 본능입니다. 물론 아무 여자의 냄새를 맡는 건 불쾌한 행위이기에 사회적 합의로 금지된 겁니다. 제 인간성으로 인해 공주님이 불쾌하셨다면 정말 죄송합니다. 그러니 제발 저를 변태라고 부르지 말아주세요.”

그의 말은 이상하게 설득력이 있었다. 귀가 팔랑거렸다.  

듣고 보니 그는 신. 그의 말대로라면 그도 난처한 상황에 놓인 것이다. 정말 그렇다는 듯 그의 얼굴에 진지함이 가득했다. 

잘생긴 얼굴에 진지한 표정을 하고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 왜 이리 그윽하고 깊은 걸까?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오랑을 좋아하지 않아. 그런데 왜 이러는 걸까?”

이것도 인간성이라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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