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라온 도라이, 천상의 아미 (오랑 VER.)

“어휴~ 진짜 왜 이러십니까?”
“남자아이는 머리를 짧게 잘라야 해.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인간 세상에선 그래.”
“싫습니다, 공주님. 제 머리칼은 저 오랑의 트레이드마크라고요. 천상계에서 제 머릿결에 쓰러진 여자가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절대 못 자릅니다. 차라리 목을 베십시오.”
정말 완강하게 거부했습니다. 머리칼을 자르다니, 내 생에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공주님은 어디 미용 가위도 아닌 재단 가위 비슷한 커다란 가위를 들고 와 내 앞에서 위협을 가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제 눈엔 그녀가 악마처럼 보였습니다.
“내가 왜 이런 위협을 받아야 하나…”
분명 여자아이 같은 외모 때문일 것입니다. 그녀는 나를 완벽한 남자아이로 보이게 하려는 의도로 이러는 게 분명했습니다.
아침에 공주님 일터로 가기 전 만난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이 떠오르네요. 그 사건 이후로 여자아이로 보이게 만들어 앞으로 그런 일을 줄이겠다는 것이겠죠. 긴 머리에 환장한 여자가 가위를 들고 설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결국 필사적으로 거부한 결과, 공주님은 제 머리칼을 자르는 걸 포기했습니다. 천상계 최고 엘라스틴 머릿결은 간신히 살아남았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두려웠습니다. 혹시 내가 자는 동안 머리를 자를까 봐, 오늘 밤은 절대 잠들지 않기로 결심했죠. 정말 위험한 여자입니다, 내 공주님은.
한편, 공주님과의 사투로 이미 녹초가 된 저는 침대의 유혹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내 ‘이부자리’라며 행거 아래 놓인 수건 두 장을 보니 심기가 몹시 불편해졌습니다.
“이젠 안 된다. 나는 더 이상 그런 홀대를 받을 존재가 아니다. 나는 공주님의 아들이다.”

곧바로 침대에 뛰어들어 누웠습니다. 그러자 공주님의 외침이 들려왔습니다.
“안 일어나?”
“거긴 내 침대야! 저기 행거 옆이 네 잠자리라고!”
“제가 무슨 개도 아니고 저기서 잘 수는 없습니다. 등이 배겨서 너무 아픕니다.”
“난 침대에 나 외에 누구도 들이지 않아!”
“그러시면 공주님이 바닥에서 주무세요. 전 침대에서 잘 테니.”
“이 자식이!”
공주님이 화가 난 나머지 생수병을 침대 쪽으로 던졌습니다. ‘훗~ 저 따위 공격으로 천상계 칠성신군 제일가는 군인을 맞힐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 라고 생각하던 찰나…
“아야!”
빈 생수병이 이마에 명중했습니다. 아프진 않았지만, 자존심이 크게 상했습니다. 전부 이 빌어먹을 아이 몸 때문입니다.
화가 치밀어 올라 소리쳤습니다.
“너무 하신 거 아닙니까, 공주님!”
그 순간, 머릿속에 소리가 들렸습니다.
“<공주님께 예를 갖추십시오.>”
이는 내 뇌에 심어진 미션 클리어 가이드 프로그램이 경고음을 울린 것이었습니다. 임무를 잊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차, 공주님을 호위하고 천상계로 돌아가는 것이 내 임무지.’
순간 이성을 되찾은 저는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그러자 공주님이 뜻밖의 말을 했습니다.
“그럼 침대에서 자는 대신 내 몸에 붙지 마. 가운데 베개를 놓고 잘 거야.”
나는 너무 놀랐습니다. 공주님이 이렇게 쉽게 양보할 줄은 몰랐습니다. 물론, 이유가 무엇이든 상관없습니다. 바닥과 수건 두 장에서 해방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강압적이던 공주님이 왜 마음을 바꿨는지 의아했습니다. 그녀를 살피니, 말없이 방바닥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공주님이 갑자기 방 청소를 시작한 것입니다.
“오늘이 대청소하는 날인가요?”
“아니.”
“보아하니 한 달에 한 번 정도 청소하시는 것 같은데, 그날이 아니라는 소리인가요?”
“그래.”
“그런데 왜 청소를…”
“아이 키우는 집은 깨끗해야 한다더라. 나 혼자 살면 대강 살아도 되는데… 이게 다 너 때문이야.”
순간 의문이 들었습니다. 혼자 살았기에 대충 살았다는 말이 그녀의 전부는 아닐 것 같았습니다.
“혼자 살아서 청소를 안 한 겁니까?”
“아니.”
“그럼요?”
공주님은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무력하게 쓰레기봉투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슬픈 표정이었고 지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잠시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던 중, 힘없는 목소리로 웅얼거렸습니다.
“죽고 싶었으니까.”
아니, 뭐라고? 그녀의 말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죽고 싶다니…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습니다.
천상계의 존재인 그녀는 죽음과는 거리가 먼 존재입니다. 천상계 사람은 불사의 존재로, 인간계의 물질과는 다른,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는 형태로 이루어져 있죠. 그런데도 그녀가 시간을 스스로 단절시키고 싶어 했다는 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왜죠? 왜 죽고 싶었습니까?”
“아프니까.”
“어디가요? 어디 병이라도 있습니까?”
“아니.”
“그런데 아프다니요? 그게 무슨 뜻이죠?”
공주님은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입을 굳게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려는 듯 보였습니다. 울음을 터뜨리려는 것을 억지로 참는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끝내 울지 않았고, 긴 한숨을 내쉰 뒤 조용히 입을 열었습니다.
그녀는 태어나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 품었던 꿈, 그리고 가장 큰 아픔이었던 실연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듣는 내내 내 마음을 무겁게 했습니다. 그녀의 꿈을 짓밟고, 몸과 마음을 이용해 그녀를 망가뜨린 천하의 잡놈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다 지나간 일이니 훌훌 털어버리세요. 좋은 사람 만나 행복하면 되는 겁니다.”
위로를 건넸지만, 공주님의 얼굴은 더 침울해졌습니다. 그녀는 거울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어쩌면 외모 때문에 좋은 사람을 만나기는 힘들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해 줄 좋은 사람이 나타나면, 공주님은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텐데… 그런 좋은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중, 번뜩이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맞아! 내 임무는 공주님의 각성이지! 바로 그거야.’
공주님은 천상계에서 최고의 절세미녀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벌을 받아 인간계의 이서민으로 살고 있죠. 그런데 말입니다, 만약 공주님이 각성한다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질 것입니다.
공주님은 천상계의 ‘해커’였습니다. 즉, 사람들의 생각을 바꿀 수 있는 강력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죠.
인간은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 같지만 사실은 뇌가 해석한 데이터를 보는 겁니다. 공주님이 각성해 사람들의 뇌를 해킹한다면, 호박도 사과로 보이게 할 수 있다는 이야기죠.
물론 그런 상황에서는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겠지만, 공주님의 외모를 천상계 제일 미녀의 모습으로 보이게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했습니다.
“공주님은 천상계 제일 미녀였습니다. 그걸 잊으시면 안 돼요.”
“그건 전생이고 지금은 현생이잖아. 내가 예뻐지는 건 수술밖에 없어. 하지만 난 돈이 없지. 가난해. 그리고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돈은 벌리지가 않아. 젠장할…”
처음부터 가로막혔네요.
저렇게 마음이 꽉 닫혀서야… 그녀 안에 꽁꽁 얼어붙어 있는 어린 공주의 영혼을 깨울 수 있을까? 마음의 문을 열어야 영혼과 소통할 수 있을 텐데… 난감합니다. 저도 그녀를 따라 우울해지네요.
도대체 방법은 없는 것인가? 라는 고심에 빠져 있을 때, 갑자기 머릿속에서 소리가 들렸습니다.
<오랑 대위에게 일시적으로 능력이 활성화되었습니다. 신의 능력을 회복했으니 천상계와 통신을 위한 단말기를 생성하십시오.>
미션에 따른 새로운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단말기 생성을 위해 신의 능력을 써야 합니다. 그걸 위해 일시적으로 나의 제약이 풀렸습니다. 그렇다면…?

손을 쳐다보았습니다. 붉은 빛이 감돌았습니다. 신의 능력이 활성화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또 몸에서 그 힘도 느껴집니다. 몸에서 신성한 빛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러면 다시 원래의 저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쁜 일이.
강한 빛과 함께 내 온몸이 들끓었습니다. 뜨거운 기운이 휘몰아치고 난 후, 순간 모든 게 평온해지며 빛은 사라졌습니다.
내 눈에 보이는 나의 손… 기다랗고 아름답네요. 그렇다면 내 얼굴도?
손으로 얼굴을 더듬다 내 아름다움을 보고 싶어 순간 침대에서 내려와 번개처럼 화장대 앞으로 가 섰습니다. 역시 아름답네요.
그런데… 왜 알몸인 거죠?
아차, 아이가 입는 옷은 190cm 장신의 몸에 맞지 않았던 겁니다. 섬뜩함이 느껴져 그대로 고개를 돌리는 공주님이 경악에 찬 모습으로 보고 계셨습니다. 알몸이라 수치스러웠습니다. 더 끔찍한 건 내가 화장대로 달려가는 모습을 분명 공주님이 다 보셨을 텐데… 이걸 어쩌죠?
조심성 없던 제가 너무 싫어집니다.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자, 날카로운 공주님의 목소리가 귀를 파고들었습니다.
“이런 미친… 변태 새끼야!”
나는 두 손으로 몸을 가리고는 공주님께 말했습니다.
“살려 주십시오.”
“안 꺼져? 이 변태야!”
소용이 없네요. 한 번 낙인은 영원한 낙인처럼… 저는 이제 완전 변태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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