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이세계 공주님과의 황당한 동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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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온도라이, 천상의 아미(오랑 VER.) 

나는 지금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아요. 눈물 대신 콧물이 나오자 훌쩍거리며, 조용히 내 비참한 현실을 되새기고 있습니다

훌쩍. 훌쩍.

캄캄한 어둠 속. 나는 좀처럼 잠들 수가 없어요.

침대 위에서는 코 고는 소리가 진동하며 내 귀를 괴롭히고 있거든요. 마치 주정뱅이가 술에 잔뜩 취해 뻗어버린 듯한 소리네요.

무슨 여자가 이렇게까지 요란하게 코를 골  수 있을까요?

그래도, 전생에는 나의 공주님입니다. 옥황상제의 성스러운 따님이었기에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 존재이죠.

하지만 그 성스러운 영혼을 담고 있는 이서민이라는 여자는, 솔직히 정말 싫습니다. 

한때 나는 옥황상제의 호위무사로서 수많은 공을 세우고 천상계의 여자들에게 사랑받던 존재였어요. 잠깐의 실수로 강등되었지만, 칠성 신군 소속 특수부대원으로서 또다시 혁혁한 공을 세워 동료들의 신망을 받던 내가!

지금 이서민의 원룸 바닥에 누워 잠을 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서민.  나의 공주님의 영혼을 담은 여자. 그러나 그녀는 인류애도 없고 모성애도 없어 보여요.

아무리 내가 아저씨에 아이로 변했다고 해도, 나는 지금 4살 아이의 몸입니다.  어떻게 저 여자는 침대에서 혼자 편안히 자고, 나는 이불도 없이 바닥에서 재우는 걸까요?

이불 대신 바닥에 타월을 깔고 또 하나를 덮고 있는 이 거지 같은 대접에 내 자신이 한없이 비참해집니다. 

처음 잠자리에 들기 전, 침대에 누웠던 나를 이서민은 쫓아내며 타월 하나를 내밀었었죠.

“너 저기 바닥에서 이거 덮고 자.”

“이걸 덮고 자라고요?”

“이불이 없어.”

“왜죠?”

“나 혼자 사는데 이불 한 채면 충분하니까. 난 짐이 많은 거 싫어. 언제든 떠나고 싶은 자유로운 여자라 무소유를 좋아해.”

“그럼 베게는요?”

“아, 씨. 드럽게 귀찮게 하네.”

이서민은 이렇게 중얼거리며 냉장고 옆 구석에서 뭔가 한참을 뒤적거리더니 두루마리 휴지 하나를 던졌습니다.

“이게 뭐죠?” 

“뭐긴 뭐야? 네 베게지. 누르면 납작해져. 나 먼저 잘 거니까 너 잘 때 불 끄고 자라. 전기세 아껴야 돼.”

똥 닦을 때 쓰는 휴지를 베고 자라니… 이건 천상계 신에 대한 모독이다! 차라리 베게 없이 자겠다. 

마음을 먹었지만 결국 나는 일어나 두루마리 휴지를 밟고 있네요. 어른이었을 때는 손으로 손쉽게 납작하게 만들 수있었겠지만, 지금은 4살짜리 아이의 몸이라 쉽지 않습니다. 

결국 휴지를 납작하게 만들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발로 밟았는데, 쿵쿵거리는 소리가 거슬렸는지, 그녀가 소리쳤습니다. 

“시끄러!”

저는 즉시 발로 밟는 걸 멈추고, 그대로 엉덩이로 눌러 휴지를 납작하게 만들었죠. 바로 납작해지더군요. 진작에 이렇게 할 걸…

납작해진 휴지 베개를 베고 누웠지만 천장의 전등 불빛이 눈에 거슬렸습니다. 

아차, 불을 꺼야지, 전기세 아껴야 되니까.

그런데 불 끄러 가는 내 모습이 한없이 초라해 보이는 걸까요? 

스위치는 냉장고 옆 벽에 있었습니다. 손을 뻗어봤지만 닿지 않았어요. 

발끝으로 서서 손을 뻗어도 닿지 않아 결국 점프해야 했습니다. 최대한 소리 나지 않게 폴짝 위어 스위치를 끄고는 캄캄한 어둠속에서 넘어지지 않기 위해 손으로 더듬으며 잠자리를 찾았습니다. 

착잡함에 그 이후로 전혀 잠이 오지 않아, 이렇게 어두컴컴한 천장을 바라보며 청승떠는 중이죠. 

갑작스럽게 바뀐 낯선 환경이 나를 불안하게 했고, 이세계로 온 나는 이서민이라는 여자와 3년을 함께 해야 한다는 생각에 눈시울마저 붉어지는 중입니다.

완벽한 8등신 꽃미남에 적당한 근육질의 탄탄한 몸매, 남자다움과 섬세함 그리고 능력까지 보유한 내가 이런 처참한 환경에 처해 있다는 사실도 믿기지 않습니다. 

이제 나는 인간성을 50% 보유하고 있어요. 그래서 그런 걸까요? 내 마음은 수치와 모멸감으로 얼룩져 있습니다. 

오해였어요. 정말 오해였습니다. 처음 공주님에게 머리끄댕이를 잡힌 건 내 잘못이 절대 아닙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반응하는 천상계에서는 아무 때나 그곳이 변하지 않아요. 나는 그런 사람이죠. 아니, 신입니다!

그런데 왜 그때 그런일이 벌어졌을까요? 솔직히 이서민보다 내가 더 당황했었습니다. 나는 이서민을 사랑하지 않아요. 그렇다고 어린 공주님의 영혼을 사랑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그곳이 반응했다라… 이유 없이 그곳이 변하다니…

이건 아마도 내 안의 신성을 몰아낸 인간성 때문일 것입니다. 어쩌면 남자 인간이란 이런 것인가 봅니다. 

의지와 상관없이 생각과 상관없이 내 신체 일부가 반응한다는 것은 정말 겪어보니 난처하고 불편한 일이네요.

어쩌면 지금 아이의 몸으로 바뀐 것이 천만다행인지도 모릅니다. 설사 그럴 일은 없겠지만, 그곳이 반응한다면 난 임무를 완수하기는 고사하고 아무것도 못 할 테니 말이죠. 

눈을 감자 천상계에 있는 나의 연인 연화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호호호호호호. 오랑 사마. 나 잡아 보세용~” 

“이런 연화. 너무 설레게 하는군.”

“호호호. 저도 너무 설레요. 호호호호.”

하늘거리는 파란색 원피스 사이로 도드라진 그녀의 뒷태가 볼륨감이 넘친다. 잘록한 허리는 한 손으로 휘감을 수 있을 정도로 가늘다. 풍만한 상반 또한 내 마음을 흔들어 놓는 나의 사랑스러운 연화.

그녀가 앞서 달리며 나를 유혹한다. 까르르 웃는 그녀의 웃음소리가 나의 영혼을 채웠다. 

아, 나의 사랑하는 연화. 그녀가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기에 내가 사랑하는 게 아닙니다. 단지 그것만이 아닌 그녀는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여자이기 때문이죠.

한 달에 한 번 정기적으로 천상계 사람들을 보살피는 봉사를 할 정도로 마음씨가 고운 여자입니다. 우아한 말을 하며, 이서민처럼 속되거나 천박하지 않아요.

나는 연화를 사랑해요. 그녀 또한 나를 사랑한다고 확신하고요. 하지만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처지.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그녀의 모습에, 두루마리 휴지 베개로 내 눈물이 떨어져 적시고 있네요.

가슴이 왜 이렇게 아픈지… 명예가 뭐라고, 옥황상제 호위무사 자리가 뭐라고 이런 선택을 했을까요?

이세계로 온 지 하루도 되지 않았지만 벌써부터 그리운 나의 천상계. 외로움을 더 사무치게 만드는 나의 사랑 연화. 

반드시 미션을 클리어하고 천상계로 돌아가리라. 굳게 결심하고 잠을 청했지만, 결국 눈물로 밤을 지새웠습니다.

새벽 동이 트기 시작하네요. 나는 한숨도 자지 못한 상태로 잠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창문으로 스며드는 새벽의 밝음은 이서민의 처참한 방 풍경과는 어울리지 않게 상쾌합니다.

깨끗한 것을 좋아하는 나는 방을 둘러본 후 어디서부터 정리해야 할지 막막해졌어요. 

지 혼자 무소유라고 떠드는 공주님의 방은 온갖 잡다한 물건들로 가득했습니다. 

무소유는 개뿔.

일단 가장 지저분한 곳은 행거였습니다. 옷은 많은데, 코디할 줄은 모르는 것 같아요. 계절별로 한 벌만 꺼내 놓고 그 옷만 입고 다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일단 옷부터 정리하자. 행거 앞으로 간 나는 아연실색부터 했죠. 옷은 행거에 걸리기보다는 마치 산처럼 쌓여 있었습니다.

저렇게 쌓아 놓을 거면 옷걸이는 왜 필요한 걸까? 그냥 바닥에 쌓아 놓아도 될 것 같은데… 

한쪽은 비워 놓고 자주 입는 옷만 걸쳐놓았습니다. 아마도 그 한 벌만 계속 입고 다니는 거겠죠? 

시선을 아래로 내리니 더욱더 가관입니다. 옷을 거는 행거 아래 수납함에도, 그 기능을 상실한 채 옷가지를 쌓아 놓은 상태예요.

나는 고개를 돌려 이서민을 바라보았습다. 

입을 벌린 채 침대에서 대자로 누워 자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 절로 한숨부터 나왔어요. 저래도 그녀는 나의 공주님입니다. 

천상계에서 우아한 여자들만 보다가, 중간계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저런 여자를 보니 가슴이 먹먹해지네요. 어쩌겠어요.. 저래도 그녀는 천상계의 공주님인걸… 

그녀보다 신분이 미천한 내가 옷정리를 하기 위해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나는 지금 4살짜리 아이의 몸이라, 공주님의 행거에 옷을 걸기엔 키가 모자랐습니다. 도구가 필요한 순간.

방을 둘러보던 중 종이 박스 더미가 눈에 띄었습니다. 

오호, 저거면 될까?

재빨리 종이 박스를 확인해 보았습다. 그두 상자가 여기저기 쌓여 있었어요. ‘꼴에 여자라고 구두는 사서 신고 다녔나 보네?’라고 비꼬아 보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닙니다. 

나는 박스를 눌러보았습니다. 이 정도면 내 몸을 지탱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곧바로 행거  앞으로 다가가 박스를 깔고 올라섰습니다. 

그런데, 아뿔사! 손이 닿질 않아요. 

내 몸뚱이가 4등신이라니! 불과 얼마 전까지 8등신 완벽남이었는데, 지금 이게 뭐람. 

신체적 핸디캡이란 이런 걸까요? 이럴 바엔 차라리 정신연령까지 아이로 바꿔줬다면 나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아니지. 굳이 나를 이렇게 신체적으로 너프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이건 명백히 옥황상제의 디테일한 꼼수인 것 같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남자라고 해서, 그렇다고 공주님을 어떻게 할 거라고 생각하신 걸까요?

세상 모든 아버지들은 똑같은 노파심을 가진 모양입니다. 쓸데없는 걱정에 이런 결정을 내리시다니. 아무튼 지금 이 몸으로는 옷 정리 같은 건 불가능할 듯해 보입니다. 하다못해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상황이니까요.

그래도 키가 닿는 곳만이라도 정리하려고 했지만, 이상하게도 정리를 하면 할수록 더 어지러워지는 건 왜일까요? 내 손은 왜 내 마음을 따라주지 않는 걸까요?

통탄스럽네요, 이 몸뚱아리가!

결국 정리는 포기했습니다. 이렇게 포기하는 내 자신이 슬프네요. 하지만 다른 일을 찾아야 해요. 나라도 이 방에서 쓸모가 있어야 하니까요. 

방 안을 둘러보는데, 내 눈에 빨래 바구니가 들어왔어요. 빨랫감이 한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그래, 빨래를 하는 거다. 세탁기에 넣고 버튼만 누르면 되는 간단한 일! 그래, 이건 할 수 있겠어!

나는 바구니를 향해 달려갔습니다. 빨랫감을 하나씩 꺼내던 중, 이상한 옷 하나가 내 손에 걸렸습니다. 

두 개의 동그라미에 끈이 달린 이 물건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천상계에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물건이었습니다. 마치 몸을 구속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는 이 옷. 

나는 그걸 들고 한참을 살펴보았죠.

그런데 왜 내 가슴이 두근거리는 거죠?

뭔가 이상했습니다. 이세계 가이드 프로그램을 켜서 검색해보니, 이 물건의 이름은 ‘브래지어’였습니다. 여성의 상반신을 가리고, 또 예쁘게 부풀리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라고 하네요. 

오호라, 인간 세계에서는 가리는 게 규칙이구나.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천상계에서는 그런 규칙이 없거든요. 물론 노골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이렇게 학대하듯 꽉 조이지는 않아요. 자연스러운 형태만큼 아름다운 건 없는데… 흠.

그런데 왜 내 마음은 자꾸 이상해지는 걸까요? 갑자기 브래지어를 들고 있는 내 손이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슬며시 그것을 코에 가져갔습니다. 

향수 냄새와 특유의 체취가 콧속으로 스며들며 심장은 더 크게 쿵쾅거렸어어요.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도둑질이라도 한 듯 가슴이 뛰는 걸까요?

갑자기 느껴지는 섬뜩한 기운.

온몸의 감각을 집중하니, 뒤통수 쪽에서 그 기운이 느껴졌습니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침대에 앉아 있는 공주님과 눈이 마주쳤어요. 그녀의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져 있었고, 손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옆에 있던 베개를 집어 들고는 내게 던지며 소리쳤어어요.

“이 새끼가! 뒤질라고!!!!”

베개가 얼굴을 강타하며 나의 균형은 무너졌습니다. 나는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이제는 이유도 없이 구타까지 하시다니. 이게 정말 나의 공주님 맞아…?

이러니 인간계 적응이 힘들어요. 진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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