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라온도라이, 천상의 아미


저는 지금 참 비참합니다. 그 누가 제 심정을 알겠습니까?
천상계 신이 이런 누추하고 지저분한 원룸에 떨어져 게다가 알몸으로 침대에 누워 있는 기분을 그 누가 알겠습니까?
제 이름은 오랑입니다. 천상계 칠성 신군 소속 군인이죠.
원래는 천상계 최고 존엄 옥황상제의 호위무사였습니다. 황제와 그의 가족들을 보호하는 게 제 역할이었지만 직속상관의 실책으로 강등이 되어 칠성 군에 예편되었습니다.
나름 가장 높은 곳에서 아래로 떨어진 케이스라 처음엔 한동안 말 못 할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가장 높은 사람 옆에서 호의호식을 하다 하나부터 열까지 스스로 해야 하는 신분의 강등은 정말 끔찍할 정도로 참혹했어요.
더 이상 말하기엔 눈물이 앞을 가려 과거 이야기는 그만하겠습니다.
아무튼 내게 임무를 주던 상관이 원망스럽기만 합니다.
“자네 특수임무가 떨어졌네.”
“중간계에 몬스터가 출현했습니까? 요즘 따라 너무 잦네요. 다 그분 때문에 이렇게 된 거겠죠?”
“그래서 자네에게 임무가 떨어졌어.”
“명령만 내리십시오. 달걀귀신이든 몽달귀신이든 귀신이란 귀신은 다 때려잡겠습니다. 충신!”
“인간계로 내려가야 하네.”
그때였습니다. 하늘이 노랗다는 게 뭔지 알았습니다. 인간계로 내려가라니… 지옥으로 가라는 소리였습니다.
여러분은 잘 모르겠지만 인간계는 ‘지옥’이라는 걸 가리기 위한 단어의 순화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태초에 유일신께서 세상을 창조하셨는데 세 개의 세계로 만드셨습니다. 천상계, 중간계, 인간계.
네, 맞습니다. 인간들의 종교에서 말하는 천국과 지옥을 말합니다. 헤븐과 헬.
인간계 사람들은 헬이 따로 있는 줄 압니다. 차마 그들이 사는 세상이 헬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하죠.
천기누설이지만 인간계는 지옥입니다. 사실이에요.
톨킨이 반지의 제왕에서 묘사한 세계관도 그걸 증명하죠. 엘프 같은 천상계, 중간계, 인간계가 괜히 나온 게 아닙니다.
“뭐야? 우리가 사는 세상이 지옥이라고? 지옥이라고 하기엔 나쁘지 않은데?”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여기가 지옥이 맞습니다.
그러니까 우주를 창조하신 우리의 아버지, 그는 절대 신입니다. 타락한 영혼들이 많아지자 그들의 깨우침을 위해 인간계를 만드셨고, 사랑과 믿음을 배우라고 언젠가는 죽을 수밖에 없는 생명을 만드신 겁니다. 벌 받는 곳이에요. 이 인간계라는 곳은…
그걸 알고 있는 제가 이 인간계로 내려오고 싶었겠습니까? 가장 타락한 영혼들이 모이는 이곳에 오기가 죽기보다 싫었습니다.
처음 이 원룸에 도착했을 때는 분노밖에 없었습니다. 나를 이 지옥으로 오게 만든 침대에 누워있는 저 여자에게 말이죠.

세상에, 이렇게 코딱지만 한 방에 사람이 산다니… 천상계 정원에 있는 제 닭장보다 작아요.
닭보다 못한 비천한 삶을 사는 인간이라니 처음에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제겐 이곳이 정말 이세계 같았습니다.
아이고, 또 지저분하기는 왜 그렇게 지저분한지. 처음 텔레포트를 하자마자 발에 뭐가 걸려 깜짝 놀랐었습니다. 뭔가 보니 밥상이더군요.
세상에 커다란 대접 안에 숟가락이 꽂혀 있었고 밥상 옆으로 지저분하게 늘어져 있는 포장재들.
고개를 돌려 방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옷장 대신 행거에는 사계절을 구분할 줄 모르는 듯 옷가지가 뒤죽박죽 걸려 있었고, 건강을 생각하는지 방구석 커다란 박스에 각종 영양제들이 뒤죽박죽 들어 있더군요.
깔끔하고 정리하는 걸 좋아하는 저는 그 광경이 악몽 같았습니다. 천상계 돼지우리가 여기보다 깨끗합니다.
하아… 한숨부터 흘러나왔습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아무튼 이곳으로 온 저는 온 지 1분도 되지 않아 천상계가 그리워졌고 나를 이 지옥으로 보낸 옥황상제를 원망했습니다.
옥황상제. 그분은 천상계 최고 존엄이십니다. 인간계와 중간계 그리고 천상계를 아우르는 최고의 권력자이시죠.
“가기 싫습니다.”
“자네를 지목하셨네.”
“누가요?”
“옥황상제께서… 그러니 눈 한 번 딱 감고 임무를 수행하게. 미션 클리어면 다시 호위무사로 승진하겠다는 약속도 하셨다네.”
“즉시 가겠습니다.”
호위무사 타이틀의 달콤함에 미션을 허락했지만, 지금은 그냥 군인으로 사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옥황상제께서 직접 내린 특명이 뭔지 궁금하시죠? 그건 지금 밥을 먹고 침대에서 자고 있는 저 여자 때문입니다.
천상계 대역 죄인, 어린 공주. 어린다는 뜻이 아니라 이름이 어린입니다.
“여기 공주의 정보네.”
“이 서민. 나이 30세. 키 162? 에? 난장인데요? 아니 어떻게 이런 몸으로 환생을 하신 거죠”
“그러게나 말일세. 다 상제의 뜻이겠지.”
“참 알다가도 모를 상제시군요. 그렇게 아끼던 고명딸이면 여신의 몸으로 환생하게 하시지.”
“대역 죄인이니 그런 몸으로 환생을 시킨 거겠지?”
중간계에 몬스터를 출현하게 만든 어린 공주. 평화롭고 소박한 그곳의 사람들을 고통에 몰아넣은 원흉인 그녀는 천상계 대역 죄인입니다.
중간계는 말 그대로 지구라는 지옥에서 벗어난 영혼들이 머무는 곳. 욕심과 질투를 벗어난 난 영혼들이 새 몸을 받는 곳이죠.
오로지 휴식을 하며 도를 닦아야 하는 중간계를 어지럽혀 놨으니 중간계와 연결된 인간계가 더 고통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대역 죄인인 어린 공주를 가까이 다가가 봤습니다. 신상 정보를 통해 몸은 대충 알고 있었지만 얼굴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했거든요.

이야~ 이것 참. 못 생겼어요. 그냥 못 생겼습니다.
살면서 마음고생 좀 했을 것 같다는 걸 알 수 있는 얼굴이었습니다.
인간계에선 못 생기면 루저라는 걸 천상계에서도 익히 들어 알고 있었으니까요. 신을 닮고 싶은 마음 때문에 생긴 현상이라는 건 알지만, 영혼계와 물질계는 다릅니다.
아무리 예뻐도 에너지는 흉내 낼 수 없습니다.
천상계는 아름다운 영혼들이 모여 있는 곳입니다. 그 영혼의 에너지가 아름다운 외형을 만들죠.
그들이 품어내는 아우라는 인간이 흉내 낼 수 없는 그 어떤 무언가 색다른 것이 있습니다.
애석하죠. 인간들이 신을 닮고 싶어 외형만을 추구하니까요. 영혼의 아름다움을 깨치면 좋을 텐데… 흠…
아무튼 천상계 최고 존엄 옥황상제의 고명딸이었던 어린 공주는, 늘어지고 구멍 난 티셔츠에 후줄근한 츄리닝 바지를 입고 입을 벌리고 코까지 골고 있었습니다.
중간계에도 저런 걸뱅이는 없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아무리 인간으로 환생했다지만 깔끔하고 청결하게 살 수는 없는 걸까요? 대체 천상계에서 보던 어린 공주님의 모습은 어디 있는 겁니까?
저는 억장이 무너졌습니다. 이 어린 공주와 앞으로 3년을 보내야 하니까요. 이게 제가 받은 특명입니다.
“천상계로 데려오게. 단 3년의 기한을 주겠네.”
“명령을 받들겠습니다!”
확신했고 다짐했지만 지금 이 방에서 어린 공주를 본 저는 무기력증부터 생겼습니다.
이건 3년 안에 바꿀 수 없는 기질로 보였습니다. 짐승을 신으로 만든다. 그것도 3년 안에… 불가능한 미션입니다.
순간 잘못 찾아온 건 아닐까 생각도 들었습니다. 분명 좌표 입력이 잘못됐을 거라고 생각한 저는 제 뇌에 이식된 인간계 적응 가이드 및 미션 클리어 가이드 프로그램을 로드했습니다.
이건 제가 임무를 받기 전 미리 이식을 받은 겁니다. 일종의 일론 머스크가 주장하는 뉴럴 링크와 비슷한 개념이죠. 프로그램이 로드된 것과 동시에 저는 새로운 자아가 생긴 겁니다.
신으로서는 인간계에 적응할 수가 없어요. 자비로운 신의 마음으로는 인간의 마음을 알고 매일 울고 아파할 테니까요.
신기하게도 새로운 자아는 제 본래의 속성을 밀어내기 시작했습니다. 두 개의 자아가 생겼는데 천상계 자아는 50% 정도로 유지하고 인간계 자아는 50% 정도로 세팅이 됐습니다.
이제부터 저는 이 세계에 자연스럽게 적응하게 될 겁니다.
미리 저장된 정보로 침대에 누워있는 여자의 영혼과 어린 공주의 영혼의 정보를 매치시켜봤습니다. 물론 잘못 찾아왔다는 생각 때문이죠.
100% 일치.
아, 이런. 제대로 찾아온 게 맞네요.
그럼 첫 번째 임무를 수행해야겠죠. 저는 무조건 공주님과 계약을 성사해야 합니다.
물리적 정신적 강압 없이 오로지 공주님의 자의에 의한 계약이어야 합니다. 천상계는 억압과 폭력이 없으니까요.
수많은 시나리오가 나왔습니다. 그중 가장 쉽고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계약을 성사하기 위해 침대에 누웠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두근거리는 걸까요? 색다르군요. 50%가 인간이기 때문에 느끼는 감정이겠죠?
어린 공주는 긴 머리 성애자였습니다. 성애라니 좀 야한데… 무지 좋아한다는 뜻입니다.
제가 천상계에서 내놓아라는 엘라스틴 머릿결인데 그래서 선택된 것도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네, 예측하셨듯 제 머리를 쓰다듬으면 계약이 되는 겁니다.
쉽죠?
이걸 위해 저는 침대에 누워 이불을 꼭 끌어안고 자는 척하며 그녀가 깨길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가슴이 두근거리는지… 알 수가 없네요.
참고로 제겐 다섯 가지의 규칙이 주어졌습니다.
첫 번째로 공주님께 욕이나 상스러운 말을 하지 않아야 한다. 두 번째로 공주님과 은밀하고 의도적인 신체적 접근을 하지 말아야 한다. 세 번째로 천상의 비밀, 그러니까 천기누설을 하지 말아야 한다. 네 번째로 반드시 공주님을 스스로 각성시켜야 한다. 다섯 번째로 신의 능력을 아무 때나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이 규칙 안에서 저는 3년 안에 미션 클리어를 꼭 해야 합니다. 벌써부터 눈물이 앞을 가리는군요.
아, 이런. 일어나셨군요. 공주님이 일어나셔서 제게 오고 계십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가슴이 두근거리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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